본문 바로가기
등산_Climb a mountain

영월 마대산 최단코스

by 의성별 2024. 9. 15.

마대산

마대산 들머리 입구에 있는 김삿갓의 흉부

  마대산은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와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서 백두대간이 선달산을 거쳐 고치령과 마항치 사이에 형제봉을 일으키고, 북쪽으로 가지를 쳐 옥동천과 남한강에 가로막혀 지맥을 다한 해발 1,052m의 산입니다. 동쪽 계곡에 김삿갓 유적지를 품고 있으며, 선낙골 계곡의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다운 산입니다. 근래에 마대산은 김병연(金炳淵)[1807~1863]의 유적지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김병연의 호는 난고(蘭皐), 지상(芝祥) 등이 있으나 삿갓을 쓰고 다녔다 하여 붙은 ‘김삿갓’ 또는 김립(金笠)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김병연은 할아버지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의 난 때 적병에게 항복하고 공을 세웠다고 속인 사실이 드러나 처형당한 사실 때문에 평생 삿갓을 쓰고 방랑하며 세월을 보낸 인물입니다. 전국에 김병연에 관한 전설이 매우 많은데 상당수는 김병연의 이름을 빌린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많은 이야기가 전국에 전하는 것은 김병연이 실제로 방랑하며 시를 짓고 많은 일화를 남겼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김병연은 세상을 떠난 뒤 전라남도 화순군 땅에 묻혔는데 몇 년 후 김병연의 아들이 영월로 이장하였다고 합니다. 1982년 김병연을 이장한 장소가 알려지면서 영월군에서는 1998년부터 김삿갓문화제를 시행하였고 2009년에는 하동면의 명칭을 김삿갓면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김삿갓박물관을 짓는 등 대대적으로 김삿갓을 지역의 문화관광 자원으로 개발하였고 이 때문에 영월 지역 특히 해당 지역의 인지도는 크게 높아졌습니다. 마대산 또한 김삿갓 유적과 관련하여 더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마대산이라는 이름은 마대산 북쪽에 자리 잡은 마을인 마대(馬垈)에서 온 것으로 보입니다. 지역에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고려 시대에 마장(馬場)이 있었다고 합니다.  마대산의 북쪽으로 망경대산[1,088m], 서쪽에는 태화산[1,027m], 동쪽으로 어래산[1,063m]이 솟아 있고, 남쪽 사면을 내려가면 단양군입니다. 마대산 남쪽을 흐르는 동대천은 남한강으로 들어가고, 동쪽의 마포천은 옥동천과 합류하여 역시 남한강으로 흘러들어 갑니다. 마대산의 동쪽에 있는 선락골은 가을 단풍이 아름답습니다. 김삿갓 묘에서 마포천을 따라 내려가면 조선민화박물관이 있습니다. 마대산을 등반하는 등산객들의 출발점은 김삿갓문학관이고, 김삿갓 묘를 지나 마대산 정상에 오르게 됩니다. 하산하는 길에는 김삿갓 생가를 거쳐서 다시 원점인 김삿갓문학관으로 돌아오는 코스가 일반적인 코스입니다.

위치: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와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의 경계에 위치

높이: 1,052m

산행거리:8.7km

산행시간: 3시간10분(휴식시간 포함)

네비검색지: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김삿갓로 216-22 난고 김삿갓 문학관

 

《산행시작》

마대산 주차장

 마대산 주차장은 김삿갓 문학관과 같이 사용합니다. 주차비 없고 화장실 깨끗하고 캠핑장이 있어 편의 시설과 상가와 음식점도 많습니다. 특히 이곳에는 김삿갓이 방랑할 때 썼다는 삿갓을 판매합니다. 문학관 옆쪽으로 흐르는 계곡은 청정지역의 계곡입니다.

노루목교

 마대산 진입로는 이 노루목교를 건너야 합니다.  수량이 풍족하여 가족들이 캠핑하고 있습니다. 

마대산 가는길의 이정표

노루목교를 지나자 마자 바로 마대산 가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아스팔트 길로 10m만 가면 김삿갓 유적지가 나옵니다.

김삿갓 유적지의 진입로

 노루목 다리를 건너 약 10m 아스팔트 길을 따라오면 이 돌탑에 도착합니다. 이곳에는 김삿갓의 시와 흉상 등이 있고 반대편에는 김삿갓 묘가 있습니다. 마대산은 김삿갓의  생가가 있기 때문에 김삿갓 없는 마대산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김삿갓의 유명세는 영월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유명합니다. 그 예로 1996년 3월 한 양조사가 ‘김삿갓 소주’를 출시했고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이듬해엔 록커 신중현씨가 김삿갓 시에 곡을 붙인 록 앨범을 발표했고, 2001년 4월, 1964년 4월부터 KBS 제1라디오에서 연재됐던 라디오 연속극 ‘김삿갓 북한 방랑기’가 37년 만에 끝났습니다. 2005년 9월엔 김삿갓이 쓴 시 12편이 발견됐습니다. 2007년에 이르러 김삿갓 탄생 200주년을 맞으며 이에 따라 여러 지역에서 크고 작은 기념행사가 열렸습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 소설 발간이 붐을 이룬 것도 이때입니다.  <소설 김삿갓-바람처럼 흐르는 구름처럼>이 발간되어 인기를 끌었습니다. 지금도 김삿갓은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그 당시 저는 어렸지만 김삿갓 북한 방랑기를 들으며 대단히 박식하고  해학이 많은 분이라 생각하였습니다. 특히  탐관오리를 골탕 먹일 때 통쾌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마대산 가는 길

 직진으로 가면 김삿갓 묘역이고 좌측으로 가야 김삿갓 주거지와 마대산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곳에서 차량 진입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관리인이 없을 때 차량으로 들어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마대산으로 올라 가는 정취가 넘치는 길

아내와 함께 김삿갓의 생가로 걸어가며 어렸을 적에 불러보았던 "방랑시인 김삿갓"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올라갑니다.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흰구름 뜬 고개 넘어 가는 객이 누구냐 열두 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 한잔에 시 한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조금 처량한 듯하나 그 당시 서민들은 이 노래를 좋아하여 국민가요 1번이었고 사랑을 많이 받은 곡이었습니다.

 

 

 좌측 다리를 넘어 가면 마대산 등산로 입구입니다.  직진코스는 처녀봉을 거쳐 가는 마대산 등산로입니다. 3년 전에 마대산 산행 시에는 처녀봉 코스로 갔습니다. 처녀봉에 정상에 오르자 겨우살이가 큰 나무마다 수십구루 달려 있어 장관을 이루고 너무 멋진 풍경이라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마음속으로 저걸 수거하여 팔면 돈이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김삿갓 생가까지 가는 길에 이런 멋있는 계곡도  볼수 있습니다.

 

 김삿갓면의 대표적인 농가 소득원인 오미자 재배단지가 이곳입니다. 무척 크고 열매가 많이 달렸습니다. 그리고 농원 중간에 "주문받습니다."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습니다. 아마 등산객들이 신청하는 모양입니다. 햇살이 비치는 곳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풍광과 서광을 받아서인지 오미자가 너무 탐스럽게 익었습니다. 오미자의 효능도 다른 것보다 몇 배나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주문도 많이 받을 것 같습니다.

오미자의 아름다운 열매

 오미자는 다양한 한약재로 면역력 강화, 항산화 효과, 간 건강 개선, 피로 회복, 심혈관 건강, 정신 건강 개선, 혈당 조절, 호흡기 건강, 피부 건강, 소화기 건강, 항염 효과 등 많은 효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오미자가 강원도 영월의 산골 김삿갓면의 주요 소득원입니다. 와우! 오미자 열매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저도 주문해서 먹어봐야겠습니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캐치프레이즈처럼 오미자를 먹고 건강해져야겠습니다.

마대산 가는 길

 마대산 정상까지 2.3km입니다. 다리밑으로는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다리는 건너면 바로 김삿갓 주거지입니다.

난고 김삿갓 생가

 "이곳은 조선조 말엽 전국을 바람처럼 떠돌며 날카로운 풍자로 상류사회를 희롱하고 재치와 해학으로 서민의 애환을 읊은 방랑시인 김삿갓이 생전에 거주 하였던 곳입니다. 1982년 김삿갓의 주거지를 발견할 당시 이곳에서 살았던 엄운섭(당시 64세)의 증언에 의하면 1972년경 주거지 본채의 대들보가 썩어 내려앉아서 철거하고 바깥채에서 살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화전촌의 집은 모두가 통나무로 짓는 것이 관례인데 이 집 본채의 목재는 기둥. 천정보. 도리등이 도끼로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어머니가 양반댁의 안목 있는 주부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현재 주거지 건물은 강원 얼 선양사업의 일환으로 2002년 9월에 복원한 것입니다." 라는 내용의 설명문입니다.

난고당

 난고당을 지나 좌측 산길로 들어갑니다. 실질적으로 여기가 마대산 올라가는 들머리입니다.

마대산 정상 올라가는 이정표

 마대산 정상까지 1.8km 남았습니다. 힘을 다하여 산행을 시작합니다.

계곡물

 계곡물이 졸졸 흐릅니다. 마대산 산짐승들이 내려와 물먹고 가기 좋은 곳입니다. 계곡물이 맑아 저도 한 모금 마셔봅니다. 청량감이 끝내줍니다. 속이 시원하고 갈증이 해소됩니다.

등산 리본이 달려 있는 아름다운 숲길

 등산리본이 달려 있는 아름다운 숲길입니다. 굽이굽이 돌아 올라가는 산길을 걸으면 시조의 문외한인 저도 시감정이 생기는 좋은 길인데 천재시인 김삿갓 같은 분이야 시상이 줄줄 나오지 않았겠습니까. 자아를 깨우쳐 주고 영혼을 맑게 해주는 따사로운 햇빛이 드는 정말 좋은 길입니다.

계곡물과 돌길

계곡물이 흐르는 돌길도 산행합니다

서광이 비친 돌길

서광이 비치는 돌길도 걸어 올라갑니다. 아내는 우리가 빛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며 신기해하기도 하고 재미 있어합니다.

마대산 등산 안내도

 마대산 정상까지 1.3km 남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정상까지 계단길도 나오고, 바위길도 나옵니다. 남들은 이구간이 힘들다고 하는데 그렇게 힘들지는 않습니다. 힘들다고 하면 한없이 힘든 것이 사람의 생각입니다. 

계단길

계단길을 오릅니다. 한 개 , 두 개 세면서 오릅니다. 

햇볕이 잘드는 양지길

 햇볕이 잘 드는 양지길을 걷고, 바위길과 나무계단길을 걷고, 또 철재 계단길을 걸으면서 주위의 이름 모를 꽃들과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올라갑니다. 마대산은 가을에 도토리를 주으러 오고 싶을 정도로  참나무가  많은 산입니다.  요즘은 아내가 모르는 꽃이름과 나무이름을 찍어 보내면 이름을 알려주는 네이버 렌즈에서 알아보기를 좋아하여 둘이서 이름을 알아보면서 즐겁게 오르니 벌써 정상에 거의 도착했습니다. 

정상 부근에서 보는 마대산 자락들

 정상부근에 올라오자 풍경은 잘 보이지 않으나 구름 덮인 산들의 모습은 보입니다. 흘러가는 저 구름을 보면 시를 한 줄 짓고 싶습니다. 이런 곳에서 자란 김삿갓의 문학관과 방랑생활이 이해 됩니다. 김삿갓의 유랑 행적은 20대에 금강산으로 들어간 뒤 함경도 통천, 홍원, 단천 등지를 돌았으며 30대가 되면서 평안도 일대 묘향산과 홍경래 난이 일어난 다복동 일대를 거쳐 황해도의 구월산, 개성 등을 떠돌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40대가 되어서는 경기, 강원 지방을 돌았으며 홍성, 금산, 익산, 영동 등 삼남 지방을 거쳐 제주도에까지 갔다 온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또한 50대가 되어서는 금강산과 강원도를 떠돌다 충남 홍성을 지나 전라도로 들어가 57세에 전남 화순군 동북면에서 객사하였습니다. 위대한 천재시인이 객사를 하시다니 안타깝고 애석한 일입니다. 

마대산 정상

 마대산 정상입니다. 산행하기 힘든 산은 아닙니다. 올해는 9월 중순인데도 날씨가 무척 덥습니다. 다행히 산은 높고 산그늘이 지어 등산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올라왔던 길을 내려다보고 건강하게 산행할 수 있게 해 주심에 대해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BAC 인증지라 사진촬영 후 인증등록을 마치고 산을 내려다봅니다. 이곳에서 김삿갓 방랑시인의 모습을 되돌아봅니다. 하산은 왔던 길로 원점회귀하였습니다. 하산하면 김삿갓의 묘역도 돌아보고 묵념도 해야겠습니다. 

 

 김삿갓 일생은 1811년 조선 순조 11년에 홍경래난이 발생하자 당시 김병연의 조부인 김익순은 선천 부사로 있으면서 반군에게 항복한 죄로 나중에 참형을 당하였고 집안이 멸족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김병연은 형과 함께 노복인 김성수의 도움으로 황해도 곡산으로 피신하였다가 형벌이 멸족에서 사면되자 아버지가 있는 양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지만 1년 만에 아버지가 화병으로 죽자 어머니와 함께 주변의 폐족자라는 멸시를 피해 영월로 들어오게 되면서 집안의 내력을 모른 채 자라게 되었다고 합니다. 권문세족인 안동 김씨 가문인 집안이 몰락하여 영월로 온 김병연은 가문의 내력에 대한 소상한 진상을 알지 못한 채 학업에만 정진하다가 영월도호부에서 실시한 과거에 장원 급제를 하였는데 이때 시제에 김병연이 작성한 글의 뜻을 풀이해 보면 "가산(嘉山)의 정(鄭) 공이 죽음으로 충성된 절개를 지켰음을 찬양하고 적에게 항복한 김익순(김병연의 조부)의 비겁한 죄를 하늘이 알고 있음을 공박하라"는 내용인데 결국에는 김병연이 자신의 조부를 호되게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 뒤 김병연은 어머니로부터 집안 내력에 대한 일들을 전해 듣고는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감과 폐문한 집안의 자손이라는 멸시로 인해 20세 무렵 처자식을 둔 채 방랑의 길을 시작하였다고 하는데 이때부터 김병연은 죄인의식으로 푸른 하늘을 바로 볼 수 없다 하여 삿갓을 쓰고 죽장을 잡은 채 방랑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방랑생활을 시작한 김병연은 금강산을 시작으로 서울, 함경도, 강원도, 황해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평안도, 제주도를 돌았으며 도산서원 아랫마을과 황해도 곡산 등지에서 몇 해 동안 훈장생활을 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863년 33년간의 방랑생활 끝에 전라도 화순(동북)에서 57세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고 합니다​​

김삿갓 묘지

 전라도 화순군 동북에서 사망하여 당시 주변에 초분 하였던 것을 3년 후에 아들 익균이 찾아가 지금의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노루목 기슭으로 이장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전남 화순에서 생을 마감한 김병연을 기리기 위해 현재 화순에는 김병연의 초분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생전에 고향 영월을 바라보며 그리워하였을 자리에 망양정이 건립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등산 공원에는 김삿갓을 기리는 시비가 있습니다

난고 김삿갓 문학관

 난고 김삿갓 문학관은 3년 전 외씨버선길을 종주할 때 관람한 적이 있어 오늘은 생략하기로 했습니다. 잘 꾸며 놓은 곳이니 한번 관람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김삿갓 계곡

 김삿갓 계곡에서 가족들이 캠핑을 즐기고 있습니다. 행복해 보이는 가족들입니다. 텐트가 많이 쳐졌고 가족들의 모습도 제각각입니다. 보기만 하여도 참 재미있는 모습니다.

김삿갓 계곡에서 신난 아내

 물보라가 대단합니다. 물보라 소리도 대단합니다.  아내가 마대산 산행으로 피곤해진 발을 식혀주고, 닦아주고, 몸과 마음을 힐링하면서 행복하고 즐거웠던  오늘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감사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