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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_Climb a mountain

안양 모락산 최단코스

by 의성별 2024. 10. 27.

모락산

모락산 정상

 

 모락산은 경기도 의왕시 오전동과 내손동에 걸쳐 있는 높이 385m 산입니다. 산 전체가 바위로 되어 있고 특히 북쪽 사면은 절벽으로 절경을 이루며 정상 남서쪽 능선은 아기자기한 암릉지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모락산 이름의 유래는 임영대군이 세조의 왕위찬탈에 충격을 받아 매일 이 산에 올라 서울을 향해 "망궐례"를 올려 '서울을 사모하는 산'이라는 뜻으로 '사모할 모(慕)', '서울이름락(洛)'으로 하여 '모락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과 임진왜란 때 왜구들이 이 산에서 사람들을 몰아 죽여서 산 이름을 '모락산'이라 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위치: 경기도 의왕시 오전동과 내손동에 위치

높이: 해발 385m 산행거리:산행시간:네비 검색지:

산행거리: 왕복 3km

산행시간:  1시간 30분(휴식시간 포함)

네비 검색지: 경기도 의왕시 오전동 11-4  모락중학교 앞 공터(주차공간이 거의 없음)  

 

《산행시작》

모락중학교 주차장

 모락중학교 주차장에 주차합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와 이곳에 주차하면 견인한다는 경고문이 쓰여 있으나 그렇게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길옆으로 2대 정도 주차할 공간이 있습니다. 모락산 공중화장실은 모락 중학교 앞에 있는 주유소에 있습니다. 안양시에서 둘레길 등산객을 위해 만들어 놓은 화장실인데 깨끗합니다.

모락산 휴게소

 운치 있는 모락산 휴게소 앞을 지나갑니다. 나이 드신 동네분들이 모락산 둘레길을 산책하시고 옆의 벤치에 앉아 삼삼오오 짝을 지어 막걸리와 두부 안주등을 시켜드는 참새방앗간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 굉장히 정겹습니다. 나도 곧 저런 시절이 올 텐데 하면서 그분들의 모습을 다시 봅니다.

모락산 숲속 놀이터

 리기다소나무가 있는 모락산 숲 속 놀이터입니다. 어르신들이 아침부터 벤치에 앉아 쉬기도 하고 역기등 운동을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좌측길은  군부대 가는 길이니 직진으로 가십시오.

리기다 소나무 숲길

 산행 처음 시작구간은 리기다 나무 숲과 흙길이라 산행하기 참 좋습니다. 아파트 단지가 많아 모락산 산행보다는 둘레길을 걷는 분들이 더 많습니다. 삼거리에 도착합니다. 모락산 정상으로 가는 길, LG아파트 약수터 가는 길, 성나자로 마을 가는 길로 갈라집니다. 모락산 정상 쪽으로 가십시오.

계단길

 많은 등산객들이 등산용 스틱으로 땅을 찍고 올라 다녀 나무계단도 너덜너덜해지고 흙길도 점점 계곡처럼 파여 들어갑니다. 

운동시설

 평행봉도 있고 역기도 있고 사이클도 있는데  너무 낡아 보입니다. 의왕시민들의 건강을 위해 새것으로 교체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암릉과 소나무와 테크 계단길

 능선길로 올라가면서 경치가 좋아집니다. 암릉지대도 나타나고, 소나무 숲도 리기다 숲에서 조선소나무 숲으로 바뀌고 테크 계단길로 이어집니다.

암릉길

 와우! 멋있는 암릉길입니다. 하늘을 보세요. 가을 구름이 멋집니다.

모락산 전망대

 모락산 전망대는 의왕시의 중심에 위치한 해발 385m의 산으로 모락산 정상에 오르면 서쪽으로 의왕시와 안양시가 넓게 펼쳐지고 그 너머로 수리산과 관악산이 북동쪽으로는 청계산과 백운저수지가 보이고 멀리 남산과 북한산, 북악산등 서울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안양시 전경

 앞쪽으로 수리산 관모봉, 태을봉, 수리봉이 보이고, 바로 앞부분은 모락산 대대 예비군 훈련장과 모락중학교, 하얀 집, 심사원, 법무운동장이 보이고, 산본 넘어가는 고가도로와 호계시장도 보입니다.  산 위에서 보는 아래세상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손가락바위

 손가락 바위입니다. 손가락의 형상을 닮아 손가락 바위라고 불립니다. 바위의 모양을 자세히 보면 검지와 중지로 우리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내와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활짝 펴 보이며 인사를 합니다. 모락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염소가족

 4개월 전 손가락 바위 옆에는 염소가족 4마리가 살았습니다. 아빠, 엄마, 아들, 딸입니다. 등산객들은 귀엽다며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염소 건강을 위해서는 안주는 것이 좋은데 너무 많이 주어 탈입니다. 이 귀염둥이 염소가족은 먹이를 안 주면 매앰매앰 하면서 국기봉 정상까지 쫓아오는 강경파 가족들입니다. 아내도 어쩔 수 없이 김밥 몇 개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곳에 다시 올라와 보니 염소 가족이 보이질 않습니다. 아내가 계속 찾아보며 매앰 매앰해도 답변이 없습니다. 아내는 불길하다며 걱정합니다. 누가 잡아가지 않았나 아니면 등산객들이 먹을 것을 너무 많이 주어 병들어 어떻게 되지 않았나 걱정이 태산입니다. 

거북바위

 바위가 거북이를 닮았습니다. 등이 유별나게 커서 걷기가 무척 힘들어 보이는데도 얼굴표정과 눈동자는 전혀 힘든 내색이 없고 희망을 향해 힘차게 전진하고 있습니다. "거북아 힘들어도 힘을 내. 응원해 줄게!"

 

 

모락산 정상 국기봉

 모락산 정상 국기봉에 국기가 펄럭입니다. BAC인증지라 사진촬영을 하였으나 역광에다가 정상 넓이가 짧고 큰 소나무에 가려 선명한 촬영을 못하여 아쉬웠습니다. 정상에서의 감사기도와 인증등록을 하고 원점회귀 하산하려 하였으나 모락산성. 모락산 전승지와 고인돌. 임영대군의 사인암까지 둘러보기로 결정하고 모락산성 쪽으로 내려갑니다.

모락산성으로 가는 길

 모락산에 매일 출근한다는 한 할아버지가 오늘도 좋은 공기를 마시며 수양하듯이 걸어가십니다. 그런데 왠지 힘들어 보이네요. "할아버지 건강하시게 오래오래 장수하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모락산성

 

 모락산성은 해발 385m 모락산 정상에 축조된 백제 한성기 시대 석축산성입니다. 산 정상부를 감싸고 있는 테메식 산성으로 성벽의 전체 길이는 878m입니다. 성벽은 자연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경사가 가파른 곳은 자연 암반을 이용하였고 경사가 완만한 곳은 안팎으로 석축을 쌓아 올렸습니다. 북. 동. 남벽은 비교적 직선을 이루지만 서벽은 능선과 계곡부를 연결하면서 자연적 지형에 많이 의존하고 있습니다.  성내의 시설물로는 문지 2개소, 치성 4개소, 망대지 2개소, 건물지 6개소 등이 있습니다. 성내에서 수습된 토기류는 호. 응. 산발형 토기, 장란형 토기 등으로 4세기- 5세기 무렵 백제 토기입니다. 모락산성은 도성인 풍납토성에서 서남부지방으로 통하는 교통로를 통제하고 배후에서 적의 침투로를 견제하는 등 도성방어를 위한 경기 서남부지역 주요 거점 성이었다고 합니다.

모락산 고인돌

 모락산 고인돌이라 하는데 검증되지 않아서인지 고인돌 표시비가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어미돼지가 새끼돼지를 감싸 않고 있는 듯합니다. 

모락산 전투

 전승기념판에는 전쟁의 승전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원에서 북쪽으로 달려 지지대고개를 넘어서면 좌전방에 수리산이, 우전방에 백운산과 모락산이 우뚝 솟아있다. 안양지역을 안전하게 통과하고 측후방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확보되어야 할 중요한 지역이다. 중공군은 이 산악지역을 이용하여 유엔군의 진출을 저지하려 하였다. 유엔군은 터키여단을 좌측에 미 25사단 35 연대를 중앙에, 한국군 1사단 15 연대를 우측에 배치하여 1월 31일 공격을 개시하였다. 한국군 1사단 15 연대는 1월 29일 연대지휘소를 수원 북쪽의 정자리로 옮기고, 1월 31일 제1대대를 우측에, 제2대대를 좌측에 배치하고 3대대를 예비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적은 모락산에 있는 1개 대대의 화력지원을 받으면서 집요하게 저항하였다. 4일간의 혈전에서 한국군 1사단 15연대는 중공군 663명을 사살하였으며 90명의 포로를 획득했다. 한편 한국군도 전사 70명, 부상 200여 명의 피해를 입었다. 이 전투의 승리로 유엔군은 1번 국도와 47번 국도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고, 안양을 지나, 인천, 영등포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게 된다. 또한 한강 이남선에서 주저항선을 형성하여 수도 서울을 사수하려는 중공군의 의도를 무산시켰다. 모락산 전투는 유명한 6.25 전쟁의 승전지입니다.

모락산 전승 기념비

 모락산 전승내용과 2001년 9월 26일 방위협의회, 뜻있는 분의 도움, 모락산 대대의 지원으로 모락산  전승 기념비를 제막하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중국 놈들을 혼내 주었다니 속히 후련해집니다. 이곳 전투에서 전사한 분들을 위해 명복을 빌며 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하다고 묵념하였습니다. 충성!

고인돌

 제가 보기에는 이 바위도 고인돌 같은데 고인돌이라 표시가 안되어 있고 백운산 가는 이정표만 세워져 있습니다. 예전에 백운산을 거쳐 바라산→청계산 까지 종주했었고 백운산을 거쳐 광교산 한남정맥길 용인 소실봉까지 종주한 적이 있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바위타는 나무

 나무의 주위에는 세 개의 바위가 지키고 있어 바위 타고 자라는 나무라 불린다고 합니다. 옹기종기 모여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기특한 모습입니다. 

예쁜바위

 사인암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이렇게 예쁜 바위들이 많아 바위 위에 걸터앉아 쉬기도 하고 가을 하늘의 뭉게구름을 쳐다보며 "인생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나" 하는 철학도 생각해 보고 국민가수 최희준 씨가 부른 하숙생의 노래도 불러봅니다. "인생은 나그넷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

사인암

 사인암은 해발 355m 모락산 정상에서 북쪽능선을 따라 1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은 계유정난을 일으켜 권력을 잡은 뒤 단종을 폐하고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세조)의 경계를 피해 광주 의곡, 지금의 의왕시 내손동 모락산으로 은신하였다고 합니다. 임영대군은 산 아래 초막을 짓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높은 봉우리 넓은 바위에 올라 궁궐을 바라보고 절하며 예를 갖춰 종묘사직을 걱정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하였다고 한다. 이로부터 후손들은 임영대군이 '한양을 사모하던 산'이라 하여 모락산이라 부르고 망궐례를 올리던  바위를 사인암이라고 이름하였다고 합니다.

사인암에서 바라본 한성

 멀리 남산, 북한산, 경복궁 뒷산 북악산의 모습이 점점이 보입니다.  임영대군도 한성을 쳐다 보고 매일  "망궐례" 했을 것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다시 정상으로 올라갔고 하산은 왔던 길로 원점회귀 하였습니다.

LG 아파트 약수터

 서울 근교의 수리산과 관악산 등의 약수터는 물이 오염되어 부적합으로 사용이 불가한데 이곳 약수터의 물은 모락산 지하암반에서 흘러넘쳐서 인지 적합판정을 받아 지역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수통에 물을 담아보고 물맛을 보니 역시 최고의 약수였습니다. 꼭 생명수 같았습니다. ※ 출발지인 모락중학교는 LG 아파트 약수터 우측10m 옆에 있습니다. 가시거리 안에 있으니 그곳으로 가시면 됩니다. 저는 차량을 법무 운동장에 주차하였기에 약 300m 더 걸어 내려갔습니다. 

하얀집의 감시대

 저의 친척 중에 교도관 아저씨가 있습니다. 어릴 적에 아저씨를 따라 안양교도소에 들어가 본 적이 있습니다. 머리를 이발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지만 교도관 가족이나 조카들은 가끔 아버지나 삼촌을 따라 들어가 이발을 하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기도 하고 공장 등을 견학하기도 하였습니다. 아저씨들은 친절하였고 무기형을 받은 무기수들이 많았는데  무섭지 않고 오히려 인자해 보였습니다. 이런 재소자들을 공장에서 작업하게 하고 교정교화 시켜 건전한 사회인으로 복귀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교도관 아저씨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호계시장에 사는 친척아저씨 집에 자주 갔고 교도관 아저씨들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락산 자락에 있는 교도소를 관심 있게 지켜보았습니다. 교도소는 1962년경 마포형무소에서 이전해 왔으니 이곳에 정착한 지 약 62년이 되었습니다. 교도소가 국가 중요시설이고 범죄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는 중요한 시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법무시설로 들어가는 출입문

 외부인 출입안내 : 이곳은 출입제한 지역이나 지역 주민의 편의를 위하여 출입로를 개방하고 있습니다.  출입로 이용 시 시설물 훼손 및 소란행위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법무부 서울소년분류심사원장. 

개방된 길

 개방된 길의 좌편은 분류심사원 관사이고 우편은 안양교도소 출입제한 구역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곳은 안양교도소 경운지로 모범재소자들이  농장에 나와 벼농사를 지었던 곳입니다. 지금은 소년분류심사원과 법무부 운동시설이 되었다고 합니다. 

법무부 운동장

 법무부 운동장입니다. 이곳 주민들은 이 운동장에서 달리기 , 산책, 축구 등을 하며 건강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축구장을 이용하려면 관리 기관인 안양교도소 총무과에 사용신청하면 승인을 해줍니다. 마포에서 이전당시 안양교도소의 부지는 약 24만 평이었다고 합니다. 군부대에서, 안양시에서 평촌아파트 단지 조성할 때, 과천 간 도로 만들 때, 의왕시에서 모락 중. 고등학교 설립 시, 학교 앞 의왕시 공원 설립 시, 안양교도소 땅을 약 14만 평을 가져가 지금은 약 10만 평만 남았다고 합니다. 

안양교도소 진입로

 

 안양교도소 진입로입니다. 마스크를 쓴 한 젊은 사람이 인도에 떨어진 은행나무 잎을 열심히 쓸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석방이 얼마 남지 않은 모범 재소자인듯합니다. 차단기 왼편에 소망스팀 손세차장이 있습니다. 출소(석방)가 얼마 남지 않은 모범재소자들을 선별하여 교도소 담장 안이 아닌 담장밖에 수용시설을 만들어 놓고 주간에는 소망 세차장에서 일하고 야간에는 시설에 들어가 석방교육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도소에서 5년이나 10년 이상을 생활하면 사회와 단절됩니다. 일례로 대중교통비, 담뱃값, 음식값 등 사회생활 전반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적응을 못하고 재범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폐단을 방지하기 위해 교도관들은 장기수들에게 석방 몇 개월 전부터 사회적응 훈련과 인성교육을 시킵니다. 불후의 명작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간의 감옥살이를 합니다. 출소 후 전과자라는 낙인 때문에 무시와 박해를 받던 장발장은 성인 신부의 도움과 구원을 받고 새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아마 교도관들도 출소자가 전과자라는 낙인에서 벗어나 장발장처럼 훌륭하고 사회와 국가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소망시설에서 교육을 할 것입니다. 교도소 진입로에서 은행나무잎을 열심히 쓸고 있는 저 귀한 재소자도 장발장처럼 훌륭한 사회인으로 복귀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오늘 아내와 함께  안양교도소 뒤편에 위치한 모락산 등반을 하였습니다. 국기봉 정상에서 보는 평화로운 안양시와 의왕시를 바라보았고, 모락산성과 모락산 전투 승전비와 임영대군과 사인암등을 보고 거닐었습니다. 모락산은 국가의 충성과 역사가 담긴 귀중한 산이었습니다. 산행시간 내내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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